Tuesday, October 18, 2011

진중권 '논객의 시대는 지났다'

누군가가 진중권 트위터에서 추려놓은 글을 옮긴다.

사실과 픽션의 결합. 픽션도 마치 현실처럼(as if) 받아들여주는 척하는 파타피지컬한 태도. 이 디지털의 일반적 특성이 한국처럼 문자문화가 약한 나라에선 as if의 성격을 잃고 픽션=현실이 되어 버리는 거죠. 
사실과 추론을 통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게 아니라, 사실에 픽션을 가미해 그럴듯한 드라마를 구성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도가니를 보세요. '보도'보다는 '영화'잖아요. 그게 더 큰 힘을 발휘해요. 한 마디로 논객의 시대는 지났죠.
나꼼수도 마찬가지에요. 사실에 픽션을 가미한 드라마. 한나라당이라는 악마. 그에 맞서는 의인들. 영웅을 죽인 배신자들, 보복하는 민중들... 결국 승리하는 우리들. 이런 시나리오거든요. 이건 너무 강해서 논리로 이길 수 없어요.
그 가당치도 않은 시나리오 속에서 짐짓 진지한듯 배우 노릇 해주는 건 피곤한 일이죠. 게다가 연기에는 영 재능이 없어서리... 이건 나꼼수만의 일회적 현상이 아닙니다. 미디어론의 관점에서 비슷한 현상들이 계속 등장할 겁니다.
기자보다는 스토리텔러, 논객보다는 애지테이터, 학자보다는 엔터테이너... 가상/현실이 뒤섞인 상태가 우리의 새로운 현실이죠. 이건 역사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에요.
논리적 설득이란 불가능한 게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하면..... 불필요해진 겁니다. 로고스에서 뮈토스로.... 논문에는 감정이 없어요. 드라마엔 눈물이 있죠.
현실이 컴퓨터게임이 되어가겠죠. 진보/보수, 여당/야당... 정의니 뭐니.. 이런 '가치'는 중요하지 않아요. 컴퓨터 게임에서 종족끼리 싸울 때, 내가 이 종족 대신에 저 종족을 택하는 어떤 윤리적 이유가 있나요?
사람들은 환상이 환상이라는 걸 몰라서 잡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게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잡고 있는 거죠. 몰라서 그러면 설득이 되는데, 알면서 그러면 설득이 안 되죠. 그건 논리가 아니라 욕망의 문제니까.
-진중권 트위터에서 발췌-
파타피지컬이란 단어는 처음 들어보는데, 이게 진중권이 그 동안 한국 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을 함축적으로 얘기하는 단어로 보인다.

두번째는 '문자문화가 약한' 한국. 한국이 문자문화가 약한 문화라는 데에 동감한다. 모두들 중요한 기록은 안 남기려 하고, 남의 글을 읽을 때 액면을 읽지 않고 그 위에 숨겨져 있다고 믿는 "의도"를 찾으려 노력하지.

지금 나꼼수의 인기는 나꼼수가 전달하는 내용이 그 자체로 타당해서가 아니고 사람들은 이번 정부를 까고 싶은데 제일 재미있고 그럴싸 하게 까주는 게 나꼼수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만약 나꼼수가 한명숙이나 박원순을 같은 방식으로 같은 레토릭을 이용해 같은 정도의 정확한 사실을 가지고 깐다면 사람들이 열광할까?

-------------------------------
Visit http://iplaws.co.kr

1 comment:

  1. 진중권님의 의견은 '그럴싸하게 까주는 거에 열광하는 것 까지만 받아들이고 끝내라' 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파타피지컬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즉, 주장하는 이나 받아들이는 이 모두 그럴싸하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것임을 알고 서로 진짜인양 행동하면서 웃으라. 다만 웃는거에서 끝나고 진짜 현실처럼 받아들이지 마라. 진짜 현실처럼 받아들이지는 말라.

    ReplyDelete

두만강의 어원

두만강(Tumen River)의 이름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네이버검색을 해보면 투먼은 만(灣)을 뜻하는 만주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과연 그런지는 만주어 전문가에게 물어봐야 할 일이다. 재미있는 건, 러시아 사람에게 두만강의 뜻을 물어보면 '...